목록전체 글 (68)
나와마주하는시간
“사진 배경이 되는 장소가 될 수 있는 한 멀리 떨어져 있고 이국적이면 이국적일수록 우리는 죽은 자들이나 죽어가는 자들의 정면 모습을 훨씬 더 안전하게 볼 수 있다.”(타인의 고통 / 수전손택 / p.109) 왜일까? 우리 스스로도 동요되고 싶지 않고 평안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서가 아닐까? 국가가 자꾸 감추고 싶어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적나라하게 자극적인 사진, 그것도 우리가 속해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서 벌어진 주검들이 우리 눈 앞에서 끔직한 모습으로 공공연하게 보여진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에 맞닥뜨리게 된다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국민들의 마음은 상처를 입을 것이고, 자신도 그럴 수 있다는 연관성을 가지게 될 것이며, 그것은 곧 정부에 대한 불신이나 반감으로 번져갈 것이다. 그 공동체..
나는 왜 한 달란트냐며 불평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은연중에 나는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열 달란트를 가진 다른 사람들을 질시해왔었다. 나보다 많이 가진 이들을 늘 부러워했던 것 같다. 내 머릿속에서 ‘감사’라는 단어를 잊은 지 오래된 것은 그 증거 중 하나다. 경복궁 옆 통의동에 있는 ‘대림미술관’엘 다녀왔다. 패션계의 전설, 샤넬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2층에 오르면 한쪽 벽면에 그의 글귀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 중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개성은 비교가 종료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라거펠트야 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적극 사용하고 배로 늘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작년 여름인가, 을 보았다. 그런데 영화화되기 훨씬 이전에 문고판으..
나를 사랑하는 이들을 가장 사랑하는 방법은 나를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나를 방임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나를 돌아보고 사랑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는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처럼 나를 잘 관리하고 가꾸어가는 것이 사랑의 기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6년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했던 드라마 를 보느라 여념이 없다. 이야기의 빠른 전개와 반전 등은 다음 편을 계속 기대하게 만들고는 나를 놔주지 않았다. 새벽이 되도록 계속 이어서 보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그만 봐야한다고 되뇌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시계를 보면서 ‘2시까지만 봐야지!’라고 결심하고는 2시가 되면, ‘3시까지!’ 3시가 되면 ‘4시까지!’ 라고 스스로에게..
돌아가고 싶은 과거 어느 한 지점이 있다. 그리고 그 지점의 나의 선택을 바꾸고 싶다. 한번도 과오를 범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러고 싶지 않겠지만, 나는 몹시도 돌이키고 싶은 시간들이 있다. 그리고 아직도 나는 과거와의 화해를 하지 못한채 그 지점이 만들어낸 아우라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과거가 단지 떨쳐버리기만 하고 싶은 시간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했었다! 그리고 여전히 나에게 다가온 그 순수한 사랑에 대해 잊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그 시공간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어쩌면 지금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을까. 돌이켜보니 인생은 너무 짧은 듯하고 시간은 너무 빠른 듯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윤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이 생애에 대한 아쉬움을 어느 시공간으..
코엘료는 화해를 말해주고 싶은 것 같다. 그것은 종교와 관련이 있으며, 알레프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시공간을 초월한 만남을 통해 은유적으로 해결하려는 것 같다. 아직 다 읽지는 않았다. 이제 책의 1/3 가량이 남았다. 이야기는 힐랄과의 관계를 통해 빠르게 '결'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를 통해 비춰진 코엘료의 사상에는 거의 대부분 동의하지 않는다. 나와는 매우 상반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음을 한 챕터 한 챕터 나아갈 때마다 느끼고, 블라디보스톡에 가까워지면서 오히려 이질감이 커지고 있다. 조금은 실망감도 들기도 한다. 그러나 끝까지 가보고 싶다. 나도 그의 생각의 결말을 보고 싶으니까.
하루 종일 를 붙들고 있지만, 이 책을 읽는 속도는 매우 느리고 이제야 반 정도 읽었다. 하지만, 이 책은 파울로 코엘료의 가치관이 집약적이고 직접적으로 드러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저자의 글을 세심하게 읽지 않으면 쉽사리 다음으로 넘어가기 어렵다. 짧은 시간 안에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함께 횡단하느라 좀 전까지만 해도 지쳐 책을 덮어버리고 말았다. 지금까지의 내용의 가장 중요한 단어는 '사랑'과 '시간' 이고 '알레프'라는 시공간을 초월한 지점은 다른 차원과 연결되어 있고, 사랑은 변하지 않고 영원히 그 곳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요 생각인 것 같다. 아니라면 할 수 없지만.. 시베리아 횡단은 표면적 여행의 목적일 뿐, 저자는 자신의 내면을 탐험하는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알레프를 통한 자..
식사를 하지 않고 걸렀다. 아내가 식사를 하라고 재촉했다. 대신 나는 냉장고의 문을 열고는 위 아래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지난번에 먹다 남은 포도주병을 찾았다. 뚜껑을 열고 커피잔에 나지막히 따라 넣고는 다시 냉장고 안에 집어 넣었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파울로 코엘료의 를 읽는 동안 조금씩만 입안으로 흘려넣고 있다.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뱃 속의 공허를 느끼고 싶었다. 비어 있는 느낌, 생리적 욕구를 거절하였지만 오히려 마음은 차분해지고, 사려깊어지는 듯 했다. 원할 때마다 입안으로 마구 집어 넣었던 모습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나는 비어있는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 그리고 텅빈 위장으로 조금씩 떨어지는 포도주는 영혼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듯 하다. 나의 뇌는 여전히 뱃속에 음식 덩어리들을..
나는 열등감이 90%를 넘어설지도 모를 정도로 염세적인 사람이다. 서른 일곱을 막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남들의 눈을 의식하느라 가끔은 나의 정신적 에너지를 마구 소비하기도 하니까. 여전히 나 스스로의 마음을 편히 쉬게 해 주지 못하고 있다. 자유롭지 못하다. 난 참 소심하고 연약한 사람이다. 가끔은 생각한다. 내가 조금만 더 키가 크다면, 세상이 과연 달라보였을까? 지금의 나의 모습 아닌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될까? 염려함으로 키를 한 자나 더 크게 할 수 없음에도 나는 그 염려의 틀 안에서 여전히 자유롭고 정의로운 세상에 한발작도 제대로 내 놓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 내 모습 뒤에 내 아이들이 있다. 내가 아빠라는 이유만으로 보잘것 없는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이해심많은 나의 딸과 깊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