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하고픈 말들 (38)
나와마주하는시간
가을이 단단히 마음을 먹고 여름의 기새를 몰아내려는 듯, 하늘의 구름은 바삐 움직이며 비를 뿌려댔다. 엊그제만 하더라도 반바지를 입고 나가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오늘은 맨살에 부딪히는 바람이 불현 듯 겨울을 예감하게 했다. 구름이 어찌나 빠른 지 건물 사이로 보이는 구름은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요즘 내 정신이 왜 이러나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내가 가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아이들을 깨워 밥을 먹여 잔소리를 하며 학교를 보내고 나면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기 다반사다. 그러다 깨면 점심 때가 다 되고 거실 테이블에 앉아 하릴없이 컴퓨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을 때가 많다. 옆에 늘 책이 있지만 펴볼 생각이 도무지 나질 않는다. 의욕이 사라졌나보다. 무얼 해야할지..
#1 절망스러운 마음이 나를 덮쳤다. 두렵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했다. 신체적으로도 약하디 약해진 시기다. 허무했다. 공허한 마음이 나를 가득 메웠다. 이런 것들이 나의 작은 울타리를 덮쳤고, 얼마 남지 않은 희망이나 용기들을 갉아먹고 있다. 답답하고 어두움이 드리운 내 영혼은 고갈되어있고, 목이 매우 마르다. 나의 샘은 진즉에 그 영광을 잃어버렸고, 간신히 누군가 아주 잠깐 목을 축일 뿐이다. 게다가 변질되고 있다. 오랫동안 영혼은 피폐해져 왔으며, 다만 그것을 들키지 않고 싶어했다. 늘 위태로움이 있었다. 자주 슬펐고, 고독함이 찾아왔다. 세수를 하며 씻어낸 거울 속 내 눈을 응시했다. 눈 주위는 푹 꺼진 듯 하고, 모공은 사정없이 넓어져 있으며, 초췌하고 핏기가 없었다. 웃음을 잃은지 오래되어 보이는..
자기연민(self-pity)을 하나님은 어떻게 여기실까? 자기연민은 피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나의 증상은 자기연민이었던 것 같다. 내가 나를 불쌍히 여기는 것으로 나의 상황에 대한 변명을 만들어 내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연약한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나에 대한 연민을 갖게 만들어 온 것은 아니었나싶다. 이런 자기 연민은 하나님이 바라실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래 전 구약 시대의 하나님께서는 자기연민을 결코 의롭다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예수님 역시 우리에게 자기연민에 있으라 하지 않으셨다. 너를 불쌍히 여겨 비탄과 슬픔에 빠져 있고, 다른 사람에게 동정심을 유발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오히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하셨다. 상황의 힘에 굴복하여 살기를 원치 않으셨다. 믿음으로 ..
식당이었던 것 같다. 네명이 앉는 테이블에 나 혼자 앉아있었고, 내 옆 테이블엔 소정샘이 앉아있었다. 그런데, 소정샘이 무언가 못마땅했던지 나를 향해 비난을 쏟아냈고, 나는 그 비난에 어쩔 줄 몰라했다. 한 마디라도 대꾸하면 좋았으련만, 그녀의 날카로운 공격에 얼굴 한 번 들지 못하고 난색을 표하며 웃기만 했다. 그 내용이 무언지도 모르고 말이다. 꿈을 꾸고 일어나려는데 몸이 몹시 무거웠고, 목이 건조했다.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꿈에서의 내 모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비난. 비난에 대한 나의 대처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성격 문제이겠지만, 특정한 감정 이상을 요구하는 대화 속에서 종종 그것을 잘 넘길만한 유머나 지혜가 부족하다. 실제로 가까운 이들과의 대화를 하다가 갑작스레 격한 감정이 될..
죽는다는 것 자체는 두렵지 않은데, 죽을 때 아플까봐 그게 걱정이다. 아픈 건 정말 싫은데 그래서 생각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고통을 주신 이유는 살아야한다는 또 삶이 의미있다는 강한 소망을 갖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때부터 넘어지고 깨지고 피흘리고 뜨거운데 데이고, 날카로운 것에 베이는 등 수많은 고통과 함께 하며 자라왔다. 다쳐도 아무렇지 않다가도 피를 보는 순간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 그렇게 아픈 게 싫은 거였다. 그 아픔을 피하고자 보호하고 아꼈던 것은 아닐까? 작년 급성충수염으로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자발적으로 택시타고 응급실을 찾았을 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수술하고 나서 사라진 고통에 감사의 마음이 들었으니. 이렇게 생각하며 갑자기 서글픈 마..
글쓰기 시간이다. 11시 정각부터 15분동안 글쓰기를 하려고 했는데 2분가량 늦어졌다. 아이패드 어플 한컴오피스의 한글에서 폰트에 이상이 생겼던 것 같다. 지금은 정상이 되었으니 다행이다. 시계를 계속 보며 나의 무의식을 주시했다. 그랬더니 정말 내 무의식은 글쓰기를 방해할 여러 조건들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그래서 11시를 전후해서 조금 두근거렸다. 지금은 약간의 해방감도 든다. 미미하지만 승리를 쟁취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무엇에 대해 글을 써야하나? 그것이 나의 고민거리였다. 이유는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쓰려하면 그와 관련된 자료를 구비해야 될 것 같은 부담감, 해당 주제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다는 수줍음, 그리고 글을 쓰다보면 한두문장 쓰고 스스로도 쓸만한 내용을 얻지 못해 펜을 놓을 것에 대한 두..
당신에겐 보이지 않겠지? 나의 소소한 배려와 이해들이. 당신에게서 배려와 이해를 요구하는 나는 이기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