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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쩌다

꿈소 2012. 12. 7. 20:03

아직 더 쏟아야 할 눈이 남았나보다. 조금전부터 다시 좁쌀처럼 가늘고 차가운 눈발이 날린다. 기온이 점점 떨어지는 것 같다. 춥다. 마음도 추운데 몸도 추우니 더 춥게 느껴진다. 이 시간 함께 해 주고 마음을 채워줄 이가 있을리 만무하겠지. 그저 창 밖의 사람이나 구경하며 모과차로 추위를 위로할 뿐. 안 그래야지 싶은데 자꾸 슬퍼진다. 나 스스로가 연민스럽다. 안스럽다. 자꾸만 눈물을 흘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를 진찰하시는 의사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내 마음이 드러날 것만 같아 눈의 초점이 흔들렸다.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내 마음 어이해야 하나.

모과차 한 잔 들어갔는데, 몸이 녹는다. 마음도 누그러진다. 눈가가 조금은 축축해졌다. 지지리 궁상이다. 눈발이 더 굵어지고 거세어졌다. 눈을 들어보니 맞은편 테이블 하나 건넌 테이블에 한 여성이 만화책을 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전혀 다르게 코믹스로 보이는 만화책을 읽는 것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뭐, 어느 누가 읽어도 만화는 특히 시리즈로 된 만화책은 몰입도가 꽤 높겠지?

따뜻해졌다.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니 눈꺼풀이 조금은 무거워진 듯 하다. 이제 눈은 인정사정 없이 길 위로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 커피숍엔 네 사람이 있다. 그런데 말하는 소리는 한 마디도 들을 수 없다. 한 사람은 여종업원이고 나머지 세 사람은 각자 테이블에 홀로 앉아있다. 솔로카페같다. 나만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라 여겼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면 어떤 삶, 어떤 생활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누굴 만날 것도 아니면서 카페에 나와 있는 이유들은 무엇일까? 혼자 있는 게 좋은 걸까?

이 지긋지긋한 외로움. 이 짙은 외로움을 깨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려나. 갑자기 찬 바람이 불었다. 탁탁탁탁탁! 한 여성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와 문 앞에 놓인 박스종이에 구두를 턴다. 밖이 추웠는지 조금 상기된 얼굴이다. 시간이 지나면 나 처럼 표정에 여유가 찾아오겠지. 역시 홀로다. 풉... 그리고 커피 한 잔 시키고는 역시 내가 눈을 들면 바로 보이는 바로 앞 테이블에 앉았다. 아직 그 여성이 일으킨 찬 기운이 다리 언저리에 남아있다.

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여자. 요즘에서야 깨달아지는 상황. 먼저 내 품 안에 들어오면 좋겠다. 내가 안으면 내 안에 안길 사람. 그리고 다리가 예쁘면 좋겠다. 이상하게 난 다리가 예쁘면 얼굴이 보통이어도 더 예뻐보인다. 그리고 활짝 웃을 줄 아는 사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그래서 내면을 가꿀 줄 아는 사람. 책을 읽으며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 사회나 정치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는 사람. 그래서 함께 나눌 대화의 주제가 많아 심심하지 않을 사람. 그리고 스킨쉽 좋아하는 사람. 나 때문에 설렐 수 있는 사람. 함께 화음을 넣어 노래부를 수 있는 사람. 피아노 잘 치는 사람!!

딱 그런 사람이 있었는데, 이미 과거의 여자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다른 이의 아내가 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으리라. 내가 왜 그랬을까? 그녀만큼 날 사랑하는 이가 없었는데. 내가 보고 싶어 나를 찾아 먼걸음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그리고 밤에 전화하면 해야할 말이 끊임없이 생겨 즐거웠는데.... 단지 시기가 그럴 시기가 아니어서 매몰차게 그녀를 찼는데... 여자보는 눈도 없었고. 그 땐 그녀의 그런 나를 향한 올곧고 순수한 사랑을, 자신을 모두 내어주고 싶은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후회가 된다. 아니 어쩌면 헤어지길 잘 했다. 그녀의 가치를 난 몰라봤으니까. 그 보석과 같은 가치를 알아봐주고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이 그녀를 가질 자격이 있는 거니까... 그 이후로 지금, 난 행복하다고 말하기 거의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인과응보인가?

한참 함박눈이 내리다가 눈발이 조금 약해졌다. 모과차도 따뜻함을 잃어버렸고, 반도 남지 않았다. 가야할 시간이 가까웠다고 알려주나보다. 눈도 이젠 그친 듯하다.

난 어쩌다가 이렇게 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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