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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프_돌아가고 싶은 어느 한 지점_파울로 코엘료

꿈소 2012. 1. 11. 00:33
돌아가고 싶은 과거 어느 한 지점이 있다.
그리고 그 지점의 나의 선택을 바꾸고 싶다.
한번도 과오를 범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러고 싶지 않겠지만,
나는 몹시도 돌이키고 싶은 시간들이 있다.
그리고 아직도 나는 과거와의 화해를 하지 못한채
그 지점이 만들어낸 아우라 속에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과거가 단지 떨쳐버리기만 하고 싶은 시간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했었다!
그리고 여전히 나에게 다가온 그 순수한 사랑에 대해 잊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그 시공간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어쩌면 지금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을까.

돌이켜보니 인생은 너무 짧은 듯하고
시간은 너무 빠른 듯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윤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이 생애에 대한 아쉬움을 어느 시공간으로 날려버리고 싶은 게 아닐른지.

<알레프>는 모든 시공간의 차원을 만날 수 있는 문과도 같다.
평행우주는 현재의 우주 말고 다른 시공간의 차원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을 또 다른 우주다. 그리고 알레프는 평행우주 속 여러 자신들과 만날 수 있는 한 지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현재의 자신의 내면에, 삶에 찾아온 숱한 갈등들의 인과 관계에 의문을 품기도 한다.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불명확한 상태에서 맞게 되는 숱한 갈등과 고민과 눈물, 기쁨, 분노, 미움과 사랑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이며, 이것들이 죽음 이후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이대로 끝이 난다면 도대체 인생은 허무하다며, 분명 어디엔가에서 나의 존재에 대한 분명한 근거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아직 자신의 내면에서 꿈틀대는 삶의 의미를 추궁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알레프>를 통해 과거로 날아가 자신의 삶의 이유와 방향을 찾고자 한다. 그동안의 알레프에서 만난 네명의 여성들로서는 아직이었다. 그리고 운명적 다섯번째 여인을 만나게 되고, 9288km의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톡 까지의 시베리아 횡단 철도에서 우연히 알레프를 경험하며 자신의 과거 속의 그 여인이 자신의 바로 앞에 있는 힐랄임을 깨닫게 된다.

아마 알레프라는 개념을 소설 속에 풀어놓기가 쉽지 않았는지, 블라디보스톡까지 가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책을 읽고 있는 나에게도 지리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코엘료의 이 소설의 스토리텔링은 느슨하고 그다지 극적이지 않다. 게다가 자주 그의 인생관과 철학을 들어야했고, 그의 말을 유심히 듣지 않으면 글 전체 내용의 윤곽마저 파악하기 힘들 것 같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가워진 커피를 조금씩 목 안으로 흘려보내며 문장들을 제대로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이 소설을 잘 파악하려면, 윤회, 평행이론, 알레프, 마녀사냥, 마법, 기독교 등의 배경지식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지만, 사실 그의 대부분의 생각에 동조하지는 않는다.그가 가진 신앙관이나 철학 등의 경계선들이 모호하고 그것을 마치 하나로 엮으려고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읽고 판단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지만 소설 속 그의 결정과정에서의 생각들은 단지 소설을 위한 흥미로운 장치들이 아닌, 그의 신념을 전파하는 도구들인 듯 했다.

그는 J. 가 되고 싶어하는게 아닐까? 전승자로서의 길.
결국 이 소설은 그의 전승자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결과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파울로 코엘료가 문장가로서 대단하다는 생각은 했다.

책의 첫 장면에서 시작된 화자의 아내에게 향한 예지자의 말 "터키의 영혼이 당신 남편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사랑을 바칠 겁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밝혀내기 전에 그가 피를 흘리게 할 겁니다." 를 이뤄가기 위해 수많은 여행의 과정들 속의 대화들을 세심하게 다루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서 그의 명성이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소설 속 그의 영적 관념들에 그리 동조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해주는 이야기들에는 한번쯤은 곱씹어봐야할 귀한 메세지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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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모든 일을 그것이 무엇이냐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해석하려 든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p.37)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할 다면,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이해할 있으리라.(p.54)

 

나무가 십만 그루나 있는 숲에도 똑같은 모양의 잎사귀는 쌍도 없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마찬가지로 같은 길을 가더라도 사람의 여행이 똑같을 수는 없어요. 우리가 계속 여행을 함께 하고, 보이는 것들을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 끼워 맞추려 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거에요. (p.71)


하나하나가 우리 각자에게 하나의 기억을 남겨준다면, 전체 선율은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p.83)


 

산다는 것은 경험하는 것이지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p.99)


무지개를 보고 싶은 자는 비를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p.110)


 

용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에게만 효력이 있다는 것을. (p.165)

 

"신을 아는 사람이라면 신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요. 신을 설명하는 사람은 신을 모르는 사람입니다."(p.172)


 

"사랑을 순간적으로 시간 안에 고정시키는 것이 가능할까요?" 나는 질문한다. "노력해볼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러면 우리 생은 지옥으로 변해버릴 겁니다. 내가 이십 넘게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똑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에요. 아내도 나도 예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관계가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겁니다. 나는 아내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행동하길 원하지 않아요. 그녀 역시 내가 자신이 처음 만났던 사람이길 바라지 않습니다. 사랑은 시간을 초월해 존재합니다.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낫겠군요. 사랑은 하나의 지점인 알레프 안에 존재하는, 끊임없이 변모하는 시간과 공간입니다."



 

"나도 가지 말씀드리고 싶어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있는 사람만이 '당신을 용서합니다.'라고 말할 있어요." (p.303)



 

신께서 계획하신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능할까요? , 가능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건 실수입니다. 고통을 피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겁니다. 무언가를 정말로 경험하지 않고도 안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 가능합니다. 하지만 일들이 진정으로 당신의 일부가 되지는 못할 겁니다. " (p.353)




 

가장 많이 보이는 감정은 복수심인 듯하다. 그것은 마침내 죄인들이 처벌을 받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아니다. 소녀들이 아름답고 젊고 관능적인, 부잣집 딸들이라는 사실에 대한 보복의 감정이다. 그녀들은 거기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젊은 시절에 잃어버렸다거나 번도 누려본 없는 것들을 가졌다는 이유로 처벌받아 마땅하다. 말하자면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해 복수하고 있는 것이다. 행복과 웃음과 희망에 대해 복수하는 것이다. 이따위 세상에는 우리의 진짜 모습, 우리 모두가 비참하고 좌절하고 무기력하다는 것을 증명해줄 감정이 자리가 없다. (p.365)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을 파괴하지도 스스로를 파괴하지도 않는다. (p.3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