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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그리고 큐티

20121202_큐티_천국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자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계 7:15~17)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 말씀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에게 어찌나 큰 위로가 되는지!

주리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고, 상하지도 않고, 눈물도 씻겨주시고..

맹장수술을 받으면서 많이 힘들었다. 그리고 나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병실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낫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묵묵히 그들의 아픔을 감내하고 이겨내고 있었다. 어디 내가 있던 병원 뿐이랴.

전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삶과 죽음의 문제들 속에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인종이나 민족, 나라와 상관없이 말이다.

 

어찌보면 인간은 매우 연약한 존재다. 들풀과도 같다. 언제 우리는 이 생을 마감할지도 알 수 없는 존재다.

육체의 고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도 고통을 받고 있다.

태어나서부터 우는 것은 기본이요, 넘어져서 울고, 맞아서 울고, 슬퍼서 울고, 아파서 울고...

눈물은 우리의 감정 표출 방법 중 가장 인간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숙명적으로 고통을 안고가야 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여기 이 말씀은 그런 우리의 필연적 고통에서의 해방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이다.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 7:14)

 

그러나 그들이 어떤 이들이냐 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과 다른 신앙을 가르는 역할을 하고 있다.

큰 환난에서 나왔으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씼어 희게 한 자들이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상황의 힘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지킨 자들이며,

어린양, 곧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게 된 사람들이다.

 

이 시대는 믿음을 지켜 나가기 쉽지 않다. 인본주의 사상과 포스트 모더니즘은 상대주의를 강조하고

하나님께 이르는 길은 다양해서 꼭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히려 기독교의 신앙의 편협성을 공격하고 있으며, 미워하고 있다.

왜 구원의 길이 한 가지 밖에 없느냐면서 화를 내고 만다.

나는 하나님 믿기 싫은데, 그럼 나의 길이 옳지 않은 것이냐 면서 자신의 길이 정당화되지 못한고 인정받지 못한다고 여겨 화가 나는 것이다.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미워하는 것이다. 때로는 그런 이유로 하나님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여 자신이 평소에 동조하지 않았던 비기독교적 사회적 이슈들에게 대하여 열렬히 찬성하는 등의 모습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곤 한다.

 

그래서 이 시대에서는 예수를 믿는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꺼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자랑할 수가 없다. 오히려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드러내는 것은 불필요한 편견을 심어주는 것과 같다. 기독교인조차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쉽게 드러내기 어렵다.

 

나 역시 쉽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내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런 편견이 두렵기도 하고, 또 드러냈는데 나의 온전하지 못한 일상으로 인해 더욱 평가절하를 받을 것에 대한 걱정이 그 이유다.

 

그러나 그렇다고 나의 삶을 감출 하등의 이유는 없다.

예수를 영접한 그 이후부터 나는 그분과 연합되었으며

영생을 선물로 받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그런 것을 받을만한 노력이나 가치, 또는 열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값없이 주어진 선물이다.

이 선물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노력이 아닌 마음을 열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천국에 대한 기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할 것 같다.

 

또한 믿지 않는 분들에게 함께 그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나누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