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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픈 말들

우울함

#1

 

절망스러운 마음이 나를 덮쳤다. 두렵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했다. 신체적으로도 약하디 약해진 시기다. 허무했다. 공허한 마음이 나를 가득 메웠다. 이런 것들이 나의 작은 울타리를 덮쳤고, 얼마 남지 않은 희망이나 용기들을 갉아먹고 있다. 답답하고 어두움이 드리운 내 영혼은 고갈되어있고, 목이 매우 마르다. 나의 샘은 진즉에 그 영광을 잃어버렸고, 간신히 누군가 아주 잠깐 목을 축일 뿐이다. 게다가 변질되고 있다. 오랫동안 영혼은 피폐해져 왔으며, 다만 그것을 들키지 않고 싶어했다. 늘 위태로움이 있었다. 자주 슬펐고, 고독함이 찾아왔다.

 

세수를 하며 씻어낸 거울 속 내 눈을 응시했다. 눈 주위는 푹 꺼진 듯 하고, 모공은 사정없이 넓어져 있으며, 초췌하고 핏기가 없었다. 웃음을 잃은지 오래되어 보이는 얼굴이다. 피로에 절은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삶은 고단하고, 피로하다. 아! 불쌍한 인생이여! 그대를 위로하고 싶구나.

인생의 굴레를 허우적거리며 하루하루 근근히 버티는 그대에게 나는 슬픔을 느끼노라.

자신 외의 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에게 갇혀 궁여지책 살아가는 그대여,

함께 위로의 눈물을 흘리자.

 

#2

 

그러나 아직 나는 완성된 '나'가 아니다.

'나'는 아직 기다려야 한다.

하루하루 버텨야 할지도 모른다.

절망이 나를 덮든,

좌절 앞에 무릎을 꿇든,

공허가 나를 사정없이 내몰아치든,

나의 샘이 절박하게 메말라버리든,

나는 기다려야 한다.

한 줌 남아있는 희망이 '기다림'이라면

난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은 어쩌면 인생의 고뇌의 단 맛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래. 기다린다. 나는 기다린다.

 

응급실에서 CT를 찍고 새벽 홀로 침대에 누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복통에 맹장일 것이라는 짐작을 했었다. 마침 커튼을 열고 들어오는 의사의 입에서 '맹장염'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이런! 올 것이 왔군!' 하고 속으로 외치며,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에 그리고 그것을 짐작했었다는 것에 헛웃음이 나왔다. 인생 중 그런 일들이 어디 한둘이랴. 그러나 그런 올 것이 오는 순간마다 두려움과 함께 일종의 유머를 느끼곤 했다. '허허' 마음에서 '맹장염'일지 모른다는 염려를 놓아버리며 나온 웃음이다. 결정되었을 때, 더 이상 불확실함에 대해서는 불안해할 필요가 없어졌던 것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삶의 꼭지들에 놓였을 땐, 오히려 능청 맞아지는 경우도 있었다.

 

아직 드디어 올 것들은 많이 남아 있고, 그것이 무엇이 될 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그것이 나의 사랑하는 이들이 고통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은 만나고서도 긴장 속 유머러스함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오직 내 스스로의 문제에 해당되는 것이다.


기다리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도 '드디어 올 것이 왔군' 이런 소리가 나올란가?



#3

성경을 읽고 싶어졌다.

다시 마태복음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예수님의 말씀이 듣고 싶었다.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에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이 결코 달기만 하지는 않는다.

내가 나의 아집을 버리지 않는 한,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도 많다.

그것은 아직 버리지 않음이기 때문인데, 만일 버린다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내가 멜 멍에는

'쉽고 가벼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나의 쾌락을 위함이 아님을 알기에

오히려 모두가 걷고 싶어하는 길에서 멀리 떨어져 나와

좁은 길이거나, 때론 거칠어서 땀이 흥건하고 숨소리 거칠어지는 곳일 수도 있어

말씀을 듣는 것에는 늘 부담감이 따른다.

그 좁은 길이 못내 불편하게 느껴져 왔고, 넓고 다들 가려는 길을 가고 싶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이 가는 길에 정말 생명이나 희망이 있는걸까?

'집단지성' 과연 그 곳은 안전한가....

오늘 문득 많은 이들이 가는 곳으로 가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했다.

 

 

#4

절망하자!

좌절하자!

공허함이 주는 고독을 씹고 또 씹어대자!

사람에 대한 불편함, 외로움

그래! 느끼고 또 느끼자.

안되면 까짓것 울어버리자. 슬퍼해버리자. 아파하자. 괴로워하자.

내가 할 수 없고 감당하기 어려운 내 능력의 한계들을 절감하고 경험하자.

그것 밖에 안 되는 형편없는 나를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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