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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픈 말들

20120924_기분 꿀꿀한 주말

꿈소 2012. 9. 24. 00:40

  어제 오늘 내가 화가 난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되짚어보자. 그 전에 먼저 철이와의 신랄한 카톡질이 있었다. 카톡은 우리의 비밀 아지트와도 같았다. 우리는 이전에 하지 못했던 우리의 적나라한 과오들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친 것 없이 벌거벗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비난하거나 그 누굴 탓하지도 않았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였고, 어쩔 수 없는 것만 같은 우리의 현실에 대해 마음으로 목놓아 울었다.


  내가 아내에게 화가 나는 이유들의 저변에는 아내에 대한 사랑의 부재에서 오는 것일게다. 이제는 거의 포기한 듯 살아가는 나와 아내. 사랑은 없고 오직 의무만 남은 우리의 하루하루는 껍데기일 뿐이겠지. 사랑은 없으니 작은 의무들이 우리의 감정을 옭아맨다. 그것이 쓰라리고 아프고, 답답하다. 그것이 나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아내로부터 시작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서로는 상대방에서 이유를 찾지 않을런지.


  그러나 이번 주말 화가 난 데에는 어린 아이 같은 유치한 내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어린 아이 같다고 생각된다. 철이와 카톡을 하면서 그런 잠재적 감정(아내에 대한 불만)과 외로움이 증폭된 상태였다. 평소에 아이폰의 배터리 소모율이 급격이 높아진 것 같아 아내가 오면 2시에 영업이 끝나는 UBASE 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아내에게 문자를 보낸다.

  “끝나면 바로 와 줄 수 있어? 요즘 배터리 빨리 달아서 아이폰 as 센터에 가봐야겠어. 2시까지 영업이라서. ”

  그러나 곧이어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아직 계획서가 완성이 안 되어서 좀 더 직장에서 일을 해야 할 것 같아. ”

  “그래? 알았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늦게 온다는 사전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내가 세워 놓은 계획들이 포기되어질 때 잘 참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당연히 직장의 공식 업무가 끝나면 집으로 곧바로 오겠거니 했다. 그러나 아내는 더 일을 해야할 것 같다고 하는 내가 예상한 시간을 훌쩍 넘겨 오후 늦게 집에 들어왔다. 집에 들어오자 다은이가 평소에 구두를 사고 싶어했다며 구두를 사러 밖으로 나갔고, 결국 밤이 늦어서야 들어왔다. 나는 내가 계획한 일들의 일부라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서운함이 가득했지만, 아무런 말로도 추궁하지 않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 아내가 되받아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토요일. 나는 토요일에 집착한다. 한 주 동안 유일하게 주어진 휴식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생각대로 지내야 조금은 스트레스를 덜어내는데, 토요일 하루 동안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것이 못내 아쉬웠고 화가 났다. 바로 이 부분이 내가 말한 유치한 행동이다. 나는 왜 더 아내의 입장을 생각해 주지 못하고 너그럽지 못할까 하는 자책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평소의 냉랭한 관계는 이런 사소한 부분을 헤아려주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일요일. 예배 시간에 맞춰간 역사가 거의 없다. 오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늘 설교 중간에 교회 문으로 들어선다. 아내는 그 책임을 나에게 지우고 싶겠지만, 나는 아내에게 덮어 씌우고 싶다. 예배가 끝나고서는 변이 마려워 화장실엘 갔고, 아내는 1층에서 나를 찾았는데 없다며 식당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그래서 1층에서 만나자고 했다. 볼 일을 마치고 1층으로 간 나는 아내와 아이들이 올라오기를 기다렸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질 않는다. 전화를 걸었다. 계속 받질 않는다. 그래서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아래 지하 식당으로 내려가 보았더니 아이들과 컵라면을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솔직히 열이 확 뻗쳤다. 도대체 이 여자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싶었다. 라면을 먹을 거면 연락을 해서 말을 해야할 것 아닌가!! 전화도 받질 않고! 내려가서 나도 내친김에 컵라면 하나를 뜯어 물을 부었다. 요즘 속도 좋지 않은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채 익지도 않은 라면을 입에 집어 넣어 우걱우걱 씹었다. 내 주위로 남자 집사님들이 모여 앉았고, 어쩌다 교육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어서 신랄하게 우리나라 교육을 씹어댔다. 맛있었다. 굶주린 사람처럼 마구 씹어댔다. 아내에게 풀어야 할 화를 엄한 곳에서 풀어냈다.


  3부 예배가 끝나 사람들이 몰려 내려오자 정신 없어진 식당을 뒤로 하고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 나는 계속 무표정이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내는 계획서에 대공원 사진을 첨부해야한다며 집에 들러 자전거들을 차에 싣고 대공원에 가자며 내게 넌지시 말을 꺼냈다. 그러자 나는 퉁명스럽게,

  “가는 길에 대공원이 있는데 무슨 자전거야? 그냥 답사 마치고 집으로 가면 돼지.”

  하고 대꾸했다.

  뒤에 있던 딸아이이가 말을 가로채며

  “아빠, 우리 집에서 자전거 가지고 대공원에 가자”

  며 졸랐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바로 대공원으로 출발하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곧장 싱크대로 가더니 설거지를 하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자 또 속이 답답해졌다. 내가 전해들은 말은 집에 들러 자전거를 가지고 공원에 가자 였는데, 들어오자마자 옷을 갈아입더니, 설거지를 해? 아니 입은 없나? 설거지가 남아 있으니 설거지 하고 가자. 라고! 참 나!! 바로 이런 부분이 서로 맞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쩌랴. 평소 습관대로 기타를 집어 들고 그런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기타줄을 뚱겼다. 그러나 설거지 마친 아내는 주섬주섬 준비하더니 나가려고 하면서 기타치고 있는 나를 원망하는 표정을 내비쳤다. 마치 나는 바쁜데 당신은 기타나 치고 있어요? 라는 것만 같았다.


  기타를 스탠드에 올려놓고, 자전거를 가지고 나가려는데 딸 아이와 아들의 자전거 바퀴가 바람이 다 빠졌다. 이래서 어딜 간다고... 아내는 퉁명하게 나 먼저 내려갈께. 하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나는 두 아이를 먼저 엘리베이터에 태우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서로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나도 뒤따라 나가 아이들의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어주었고 손으로 눌러 상태를 재차 확인한 뒤, 모두의 자전거를 트렁크에 실었다.


  그리고 대공원으로 향했다. 날은 참 좋았다. 서쪽으로 기우는 햇살도 따사로웠고 사람들로 풍성해진 공원의 분위기는 살가웠다. 단지 차가운 것은 나와 아내 뿐이었다.


  아내는 현장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고, 나는 아이들과 잠시 뛰어놀았다.


  기분 탓인지, 무척 피곤한 하루가 되었고, 나의 주말은 이렇듯 엉망으로 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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