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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마주하는시간
2015년 10월 27일 화요일 오전 9:05:37 호세아 11:12-12:14 “여호와께서는 한 선지자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이스라엘이 한 선지자로 보호 받았거늘”(13절) 하나님께서는 기억하길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들을. 나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많은 사람들을 통하여 인도해 오셨다. 그러나 나의 반응은 하나님을 믿던 초반과 달리 리더에게 분을 내었고 그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이 내게 붙여 주신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그리고는 공동체에서 떠나 유리하고 방랑하는 삶을 살았다. 죄인된 삶의 결과였다. 우매함으로 마땅히 나아갈 바를 알지 못하였고 기도도 하지 않았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단절되고 말았다. 하나님이 그리 원하신 것이 아니고 내가 내 인..
2015년 10월 26일 월요일 오후 2:27:18 호세아 11장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아들과 같이 여기셨다. 이스라엘을 사랑하셨고 자신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셨다. “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내시면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떨며 오되 그들은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화와의 말이니라.”(10-11절)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자신의 음성을 듣고 돌아오기를 두려워 떨더라도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것 같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사랑을 사랑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사랑하여 애굽에서 불러내고 에브라임의 걸음을 고치고 팔로 안아주었으며 사랑의 줄로 이끌고 멍에를 벗기고 그들 앞..
탈정치적 생명정치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이전의 이데올로기에 의한 정치 대신 공포의 정치, 즉 취약한 타자로부터 공포를 제거하고 존중을 극대화하는 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타자와의 안전한 거리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근접성이 없는 타자는 적이 될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와 라캉은 이웃과 보편성은 양립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웃의 비인간적 특징으로 인해 보편성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균형잡힌 상호관계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투쟁과 공격은 인간의 삶의 일부입니다. 사람은 한계를 모르며 절대적 과잉을 추구합니다. 그런 까닭에 법이라는 것이 필요해졌지요. 심지어 사람은 선마저 욕망의 대상 위에 올려놓습니다. 절대적인 것을 추구하는 '무제한적 욕망' 덕분에 ..
가을이 단단히 마음을 먹고 여름의 기새를 몰아내려는 듯, 하늘의 구름은 바삐 움직이며 비를 뿌려댔다. 엊그제만 하더라도 반바지를 입고 나가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오늘은 맨살에 부딪히는 바람이 불현 듯 겨울을 예감하게 했다. 구름이 어찌나 빠른 지 건물 사이로 보이는 구름은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요즘 내 정신이 왜 이러나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내가 가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아이들을 깨워 밥을 먹여 잔소리를 하며 학교를 보내고 나면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기 다반사다. 그러다 깨면 점심 때가 다 되고 거실 테이블에 앉아 하릴없이 컴퓨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을 때가 많다. 옆에 늘 책이 있지만 펴볼 생각이 도무지 나질 않는다. 의욕이 사라졌나보다. 무얼 해야할지..
2015년 9월 22일 화요일 오전 8:58:52 마가복음 14장 로마가 통치하던 시대의 처형은 지금의 처형과는 달랐다. 지금은 심지어 사형제도마저 사라지는 추세다. 행여 사형을 하더라도 최대한 고통스럽지 않게 죽이는 것이 관례다. 처형이 이루어지기 전의 재판 역시 오늘날과는 많이 다르다. 범죄자는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자신을 변호사를 통해 보호할 수 있으며 법 아래서 신변 보호가 확실하다. 범죄자를 피해자들로부터 떨어뜨려 놓는다. 만일 범죄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범죄자는 피해자들로부터 혹독한 댓가를 치룰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신성모독이라는 죄명으로 잡힌 예수님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변호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변호사가 없었다. 그리고 신성모독의 피해자들? 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2015년 9월 15일 화요일 오전 10:20:26 _ QT 마가복음 7장 1. 문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 사람의전통 vs 하나님의계명 제자 중 몇 사람이 씻지 않은 손으로 떡을 먹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 및 서리관이 예수께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않느냐고 따져물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명은 저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그들을 향해 되물으셨다. 사람의 전통을 요즘 말로 하면 ‘문화’ 가 아닐까? 사람의 문화와 하나님의 계명은 꼭 서로 들어맞지 않는다. 교회의 문화와 하나님의 계명도 그러하고, 세상의 문화와 하나님의 계명 역시 그렇다. 사람들이 전통, 혹은 문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사람의 전통이나 문화가 어떻게 형성되어지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문화의 형성은 동..
2015년 9월 15일 화요일 오전 12:45:49 [마가복음 6장]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막 6:34) 예수님께 무엇을 얻으려고 그들이 무릅쓰고 예수님께로 나아왔을까? 자신이 무엇을 얻으려는지 조차 모르지 않았을까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의 말씀을 듣기보다는 예수님으로부터 병고침을 받기 위해 나왔을 것이다. 그들의 갈증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하지만 그런 갈증으로 예수님 앞에 나왔을 때 그들은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육체가 나음을 얻는 동시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되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 앞에 무엇을 구하고자 몰려오는 이들을 바라보시며, 목자 없는 ..
#1 절망스러운 마음이 나를 덮쳤다. 두렵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했다. 신체적으로도 약하디 약해진 시기다. 허무했다. 공허한 마음이 나를 가득 메웠다. 이런 것들이 나의 작은 울타리를 덮쳤고, 얼마 남지 않은 희망이나 용기들을 갉아먹고 있다. 답답하고 어두움이 드리운 내 영혼은 고갈되어있고, 목이 매우 마르다. 나의 샘은 진즉에 그 영광을 잃어버렸고, 간신히 누군가 아주 잠깐 목을 축일 뿐이다. 게다가 변질되고 있다. 오랫동안 영혼은 피폐해져 왔으며, 다만 그것을 들키지 않고 싶어했다. 늘 위태로움이 있었다. 자주 슬펐고, 고독함이 찾아왔다. 세수를 하며 씻어낸 거울 속 내 눈을 응시했다. 눈 주위는 푹 꺼진 듯 하고, 모공은 사정없이 넓어져 있으며, 초췌하고 핏기가 없었다. 웃음을 잃은지 오래되어 보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