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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그리고 큐티

놀라시며 슬퍼하사

2015년 9월 22일 화요일 오전 8:58:52


마가복음 14장


 <놀라시며 슬퍼하사>


  로마가 통치하던 시대의 처형은 지금의 처형과는 달랐다. 지금은 심지어 사형제도마저 사라지는 추세다. 행여 사형을 하더라도 최대한 고통스럽지 않게 죽이는 것이 관례다. 처형이 이루어지기 전의 재판 역시 오늘날과는 많이 다르다. 범죄자는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자신을 변호사를 통해 보호할 수 있으며 법 아래서 신변 보호가 확실하다. 범죄자를 피해자들로부터 떨어뜨려 놓는다. 만일 범죄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범죄자는 피해자들로부터 혹독한 댓가를 치룰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신성모독이라는 죄명으로 잡힌 예수님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변호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변호사가 없었다. 그리고 신성모독의 피해자들? 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되지 않는 이들에게조차 보호를 받지 못했다.


  “그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막 14:65~65)


  하인들마저 손바닥으로 예수님을 때렸다. 침이 예수님 얼굴로 떨어졌다. 누군가가 다가와서 예수님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쳤다. 이는 고통의 시작일 뿐이었다. 예수님은 모욕적인 말을 들으며 채찍질 당하셨는데, 그 채찍의 끝부분에는 갈고리 같은 것이 있어 맞을 때마다 살갗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사형 집행자들은 예수님이 달리실 십자가를 직접 끌고 가게 했으며 (중간에 도움을 받음), 머리엔 가시나무를 엮은 왕관을 씌워 피를 흘리게 하였고, 마지막으로 손과 발에 대못을 박아 십자가 위에 달리게 하였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 죽음은 고통과 함께 서서히 이르렀다. 군병 하나가 다가오더니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예수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다. 당시의 구속에서부터 사형에 이르는 과정은 그 고통의 정도가 현대사회와는 사뭇 달랐다. 물론 이런 고문과 죽음은 근대까지 지속되었다고 생각된다.


  예수님의 죄명은 신성모독.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한 것과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파한 것이 그의 죄명이었다. 예수님은 사역하시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채워주셨으며 병든 자를 낫게 하시고 종교적 위선을 질타하셨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설파하셨다. 하나님 나라를 전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셨다. 하지만, 이를 시기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종교지도자들은 그를 죽이고자 하다가 계산적인 가룟 유다와 모의하여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았다.


  예수님은 자신이 제자로부터 배신을 당할 것과 어떤 고통을 받을 지를 알고 계셨다. 제자에게만 배신을 당했으랴. 창조주는 피조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인간이신 예수님은 극심한 고통을 앞에 두고 있었다.


  당신이 당할 고통에 성경은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심히 놀라시고 슬퍼하사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막 14:33~34)


 심히 놀라시고 슬퍼하셨다.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될 정도로 그에게 닥친 고난이 버거운 것이었다. 제자들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하셨고 예수님은 세 번을 올라가서 기도하셨다. 예수님의 기도는 다음과 같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막 14:36)


  예수님의 인간적인 요구는 피하시고 싶은 것이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예언의 성취의 순간이 지나가기를 간구하셨다. 죽음이 두렵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작은 병에도 생명에 지장을 줄까봐 노심초사하는 것이 우리 사람의 본능적 모습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와서 나의 모든 것을 빼앗고 벗기고 침을 뱉고 때리고 채찍질하고 온 몸이 피투성이 되고 많은 이들이 구경하는 데서 대못에 박혀 형틀에 매달려 오랜 시간동안 피를 흘리며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면. 마음이 먼저 녹아져버릴 것이다. 스트레스가 심하여 두려움에 떨게 될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도 두려우셨다. 고통과 죽음의 잔이 옮겨지기를 기도하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자신의 죽음이 아니므로 예수님이 죽음에 이르러도 함께 하겠다고 장담하기도 하고 예수님이 이를 위하여 기도를 요청하여도 피곤함에 눈을 뜨지 못하고 졸기만 할 뿐이었다. 예수님의 죽음이 바로 닥칠지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베드로) 네가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구나.”(막 14:37~38)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피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막 14:36)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막 14:41~42)

  자신이 팔린다고 말했을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이윽고 유다가 예수님께로 다가왔다. 검과 몽치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고난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예수님의 심정을 담은 ‘심히 놀라시고 슬퍼하사’ 라는 어구가 마음에 많이 와 닿는다. 자신에게 닥칠 상황을 아셨을 때, 예수님은 기도하셨고 인간적 욕구도 솔직하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