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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그리고 큐티

2015년 10월 26일 월요일 오후 2

2015년 10월 26일 월요일 오후 2:27:18


호세아 11장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아들과 같이 여기셨다. 이스라엘을 사랑하셨고 자신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셨다. “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내시면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떨며 오되 그들은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화와의 말이니라.”(10-11절)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자신의 음성을 듣고 돌아오기를 두려워 떨더라도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것 같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사랑을 사랑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사랑하여 애굽에서 불러내고 에브라임의 걸음을 고치고 팔로 안아주었으며 사랑의 줄로 이끌고 멍에를 벗기고 그들 앞에 먹을 것을 주었음에도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7절) 못된 자식과 같은 이스라엘이었다.


  유현이를 생각해보게 된다. 걸음마를 배우고 잘 걸을 수 있도록 바로 잡아주고 안아주고 먹을 것을 주며 자란 유현이가 내 마음과 같지 않게 커가면서 자신의 고집이 세지고 훈계를 듣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기도 하며, 어떤 부분에서는 아버지인 나를 부끄러이 여기기도 하고 나의 마음을 모른 채 맛있는 것을 먹는 것과 장난감을 사는 것에 온통 마음이 빼앗긴 모습을 본다. 아들이 좀 더 성실하고 책임감있게, 그리고 성숙한 모습으로 자라기를 바란 나는 유현이가 그렇지 않은 행동을 보일 때마다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 같아 화도 내고 간혹 손찌검을 하기도 했다. 어리다고 이해를 해 주어야지 하면서도 내가 바라는 아들의 이상향이 아닌 행동에는 어김없이 잔소리가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그런 부모로서의 행동 뒤편을 자신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을 볼 때마다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부모가 어찌 자녀를 쉬이 버리겠는가?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흘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8절)


한편, 나는 하나님 앞에 어떠한 사람인가? 나의 삶 속에 관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은혜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나는 자주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내가 겪는 현실 뒤에 계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지 못하고 있다. 1997년 방황 후 꽤 오랜시간동안 하나님께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다. 분명 그동안 하나님은 나의 걸음을 가르치고 안아주시고 고쳐주시고 목에서 멍에를 벗어주시고 먹을 주시려 노력하였지만, 그것이 하나님은 은혜가 아닌 내 선택의 몫이라고 착각하여왔다. 끊임없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구실을 찾아내었고 그 시간이 꽤 오래되었다. 


  결국 하나님이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고서야 이제 주님께로 떨며 나아오고 있다.


  지금 나는 민감하고 싶다. 내 삶에서 일을 이루어가시고 나를 위로하시고 걸음을 고치시고 안아주시고 멍에를 멋겨주시는 것을, 또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알고 싶다.


 <기도제목>

  1. 하나님이 내 삶에서 이루어가시는 것을 발견하는 눈을 주소서.

  2. 유현이를 더 잘 사랑하게 하소서.

  3. 하루의 일과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