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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픈 말들

목적이 뭐니

내가 궁핍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1-13)

 

청심환이라도 먹어야겠다.

예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나의 내면이라는 것이 약해질대로 약해져서

이젠 나를 조금이라도 번거롭게 하는 것이면

커다란 떨림으로 다가온다.

스트레스를 줄 만한 작은 자극조차 극도로 싫어해서

큰 스트레스가 되어 버린다.

머릿 속은 온통 걱정으로 가득해버린다.

 

내일이 공개수업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만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은 절대 평안한 것이 아니다.

두려워하고 답답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저 하기 싫은 그 마음으로

흘러가는 시간의 압박과 함께

고통스러워 한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지 자족할 줄 알았던 바울의 마음을 닮고 싶다.

바울은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다.

그것도 사람들에 의해서

가는 곳마다 신변에 어떤 위험이 있을 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가장 위협적인 것은 환경이 아닌 만나는 사람들이었다.

 

그에 앞서 예수님의 고통을 생각해보자.

 

아무 죄가 없지만,

사람들로부터 모욕과 침뱉음을 당하고,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 죄인으로 낙인을 찍히게 된다.

그리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골고다 언덕길을 묵묵히 오르신다.

그 모든 사람으로 인한 두려움들을 극복하셨다.

 

나는 십자가를 매고 있지도 않고 걸어보지도 않고선

그 뒤에 있을 법하지만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수많은 상념들을 다 싸가지고 와서

내 머릿속을 꽉꽉 채우고는 두려움을 짜내고 있는 것 같다.

 

바울이 말한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한 말은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만족할 수 있다 라는 말이다.

 

그래! 나는!

오늘 있었던 지나간 일과

현재의 순간과

다가올 내일을

만족하고 있는가?

그 모든 것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는가?

그런 일체의 비결을 배웠는가?

 

아니니까 이 글을 쓰는 것 아닌가?

 

만족하자.

자족하자.

담담히 받아들이자.

 

내가 좋아하는 후배는 종종 이런 말을 사용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

 

그래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냥 담담하게

준비된 만큼만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본연의 모습을

딱 있는 만큼만

보여주자.

상대방의 평가에

뭐 그리 대수인가?

 

잠깐 짚고 넘어가자.

스스로에게 따져보자.

 

'너무 잘 하려고 하는 거 아니야?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려는 거 아니야?

목적이 뭐니?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니?

아니면, 교사로서 너 자신의 성장과

아이들의 배움을 위해서니?

너의 걱정의 근본은 무엇이니?

전자니 후자니?

만약 전자라면 그 생각들 때려치워!

단지 내일 한 시간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배우기 위하여 준비해.

더 염려하면 한 대맞는다.

 

늘 너는 그래왔지

너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만

너를 맞춰왔지

그게 바로 불행의 시작이자

두려움의 원인이야.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가 아니라

너가 너를 어떻게 보느냐야.

그게 너의 정체성이지

다른 사람에게 끌려다니지 마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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