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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픈 말들

열이 나는 유현이

아들의 표정이 아까와는 달라졌다. 눈동자는 조금 더 작아졌고 눈빛은 힘을 잃은 듯 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아빠, 자전거 타자" 며 신나게 졸랐기 때문에 갑작스런 아들의 변화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습관처럼 머리에 손바닥을 대보았다.


다은이도 그랬고, 유현이도 그랬고, 나를 닮았는지 유아시절부터 열이 자주 났고 한번 열이 나면 좀처럼 내려가질 않았다. 그래서 잘 지내는 것 같아도 생각나면 한번씩 아이들의 이마에 손을 얹곤 했다. 내 손은 비교적 정확한 온도를 잴 수 있다. 혈액순환이 잘 안 되는 걸까? 손은 늘 바싹바싹 말라서 손바닥 피부껍질엔 습기가 거의 없고 손바닥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길들이 하얗게 일어나 보일 정도다. 건조한 손이 어딘가에 접촉을 하면 미세한 온도차를 잘 감지를 한다. 특히 아이들의 열에 대해서는 대충 어림 짐작을 하게 되면 오차 범위 5도 내에서 맞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누군가와 악수를 하게 되면 지레 긴장이 된다. 내 마른 손이 상대방에게 너무 느껴지지는 않을까 하고 말이다.


"다은아, 동생 데리고 빨리 병원에 가야겠다. " 마침 오늘은 금요일이고 시계를 보니 오후 6시에서 몇 분 더 지나가고 있었다. 예전에 살던 곳 근처의 소아과는 대부분 일찍 문을 닫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졌다. 짐을 집에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아빠 배가 아파. 그리고 다리도 아파." 갑작스레 높아진 열이 유현이의 몸을 괴롭히고 있는게 분명했다. 아파트 현관 밖으로 나오자마자 나는 쭈구려 앉고 유현이를 등에 업었다. 병원까지 업고 잰걸음으로 빠르게 이동하는데 좁은 인도를 지나는 사람들이 많아 자꾸만 지체됐다. 내 마음은 급해도 늘 그렇듯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면 무관심할 뿐이다. 그렇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나는 아무 의미가 없듯. tv 속 혹은 영화 속 주인공들은 클로즈업되지만, 나머지는 조연이나 엑스트라여서 시청자들은 그들에게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듯, 나는 내 사람의 주인공이면서 다른 이들의 삶의 엑스트라이기도 한 것이다.


아이들이 열이 나면 난 벌써 긴장하고 만다. 어릴 적 한밤 중 아빠는 나를 등에 업고 병원으로 달리셨다. 너무 심한 고열이었다. 피가 멈추지 않았다. 코도 피를 토해내고 입도 피를 토해냈었다. 아마 아빠의 등에도 피를 적셨으리라. 응급실에서 채온을 재니 열이 40도를 왔다갔다 했다고 한다. 작년인가 두 아이들 모두 열이 40도에 이르렀었다. 브라운 체온계도 40.2 도를 가리키자 다은이의 몸이 심하게 뒤틀리면서 몹시 괴로워했다. 아내와 나는 다은이의 몸에 마비가 오는 듯 심히 염려되어 재빨리 욕실에 데려가 찬물 샤워를 시켜 대충 수건으로 감싸 바로 차에 올라타고는 응급실로 달렸었다. 그럼 그 때까지 무얼 했냐고? 당연히 열을 쫓아버리기 위해 고군분투했지. 얼음찜질에 해열제도 바꾸어서 먹여보았지만, 열은 39 아래도 내려갈 생각일랑 없었다. 몇분, 아니 몇 십초 간격으로 계속 체온을 쟀다. 그것도 두 아이를 번갈아서 말이다.


병원문을 열고 들어서니 우리가 마지막 손님인 것 같았다. 대기실은 아무도 없었다. 간호사마저 보이지 않아 진료가 끝이 난 줄 알고 잠시 걱정됐다. 만일 그랬으면 처방 없이 해열제 만으로 하루를 버텨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인기척에 퇴근할 마음으로 깊숙히 앉아있던 간호사가 얼굴을 내밀었다. 유현이를 쇼파에 앉혔다. 연체동물처럼 축 늘어졌다. 다은이는 책꽂이로 걸어가 책을 꺼내 자리를 잡았다. 그동안 나는 접수를 하고 유현이 앞으로 다시 돌아왔다. "유현아 힘들어?" "응. 배가 아파. 다리도 아파." 잠시 아이폰을 꺼내들고는 유현이의 모습을 담으려고 했다. 적은 양의 조도로 인해 유현이가 움직일 때마다 궤적이 생겨 제대로 담지 못했다. 그래서 몇 장을 더 담으려고 했는데 마침 "유현이요~" 부르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잠시만요. 아이 사진 좀 찍고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만약 정말로 그렇게 말을 한다면 난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았다. "네." 하고는 진료실 안으로 들어갈 수 밖에. 가끔 아쉽다. 나의 행동들이 유치하게 여겨지는 것을 느낄 때면...


수많은 어린이 환자 중 한명이겠지? 오늘따라 선생님은 유난히 성의를 덜 보이셨다. 청진기가 유현이의 배와 등에 닿았다가 떼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채 1초도 안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의사선생님 맞은 편의 쇼파에 앉아 의사 선생님의 손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목도 보았다.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시기 전에 내가 먼저 질문했다. "목이 많이 부었나요?" "네, 목이 좀 부었네요. 요즘 수족구가 유행이라 수족구일 수도 있어요." "아 그래요?""네, 그렇지만 손과 발에 물집같은 것은 없으니 아닐 수도 있지만, 혹시 음식을 많이 못 먹거나 열이 잘 떨어지지 않으면 내일 다시 오세요."


병원 건물 1층에 있는 약국 안으로 들어섰다. 동네 약국이라 그런지 접수하시는 여사장님은 느긋해보이셨다. 처방전을 건네고는 잠시 기다렸다. 시간이 저녁시간이라 밥을 먹고 약을 먹여야 할지, 열은 거의 39도 인데 약을 먹고 밥을 먹어야 할지, 아니면 따로 나오는 해열제를 먼저 먹여야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약사분께서 나오자마자 의견을 여쭈었다. "약에는 해열제 성분이 들어있으니까 해열제는 약 먹이고 2시간이 지나도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먹이시구요, 밥 먹고 약을 먹어도 되고, 약을 먹고 밥을 먹어도 무방합니다. " "네 감사합니다. " 유현이의 손을 잡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맞은 편 본죽으로 들어가 죽을 시켜놓고 봉지에서 약을 꺼냈다. 먼저 시럽을 정확하게 6mm 넣고 가루약을 털어 넣어 흔들었다. 빨리 열이 내려가게 하고 싶었다. 혹시 열이 내려가지 않으면 해열제를 먹여야 하므로 밥을 먹고 약을 먹으면 모든게 늦어질 것 같았다. 내가 떠주는 숟가락을 힘겹게 받아먹는 유현이의 모습을 보니 안스러웠다.


열이 조금은 떨어졌지만 몇 분전 잰 체온은 38.2도, 사실 해열제가 제 역할을 잘 못해주고 있다. 예전엔 의사선생님이 목이 부어서 열이 난다고 열이 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목이 부었다며 분명하게 상태를 말씀해주셨지만, 오늘은 목이 붓긴 부었지만 꼭 목 때문에 열이 나는 것 같지는 않다라는 모호한 입장이어서 사실 조금 더 긴장을 하고 있다. 유현이가 얼른 열이 떨어져서 장난도 치고 밝게 웃었으면 좋겠다. 아프니 왠지 안스러워 머리며 어깨며 다리를 죽 쓰다듬어주었다.


열아, 얼른 유현이에게서 나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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