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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픈 말들

할머니가 너 목 아프다며

꿈소 2012. 7. 5. 22:57

  오랫만의 서울 나들이었다. 광화문을 지나 경복궁의 돌담길을 걷는 것도 좋았고, 선생님의 사진전을 여유로이 보며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것도 좋았다. 서울에 올라가는 김에 할머니를 뵙자는 아내의 의견에 흔쾌히 동의했다. 승락이라기보다는 할머니를 생각해준 아내가 고마웠다.

 

부슬비가 살며시 내리고 있었다. 시장에서 산 참외 박스를 두 손에 들고 할머니가 사시는 집 골목길 안으로 들어섰다. 오랫만에 적셔진 땅에서 오랜 추억과도 같은 냄새가 올라왔다. 할머니 댁의 맞은 편 집 어르신들이 처마 밑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시고 계셨다. 뵌 적은 없지만, 가벼이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댁의 철문은 참외박스가 간신히 들어갈 만큼 좁다. 철문을 일단 통과하고 1미터 앞에서 모퉁이를 돌면 주방이 딸린 작은 방이 보인다.

"할머니, 저희 왔어요."

"왔냐? 어서 와라."

날도 어두운데 주방만 불을 켜 두셔서 방은 더욱 어두웠다. 예전같았으면 할머니께서 직접 마중을 나오셨을 법도 한데 무심한 세월은 그마저도 힘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할머니께서는 화색이 돌며 반가이 맞아주셨다. 그리곤 손수 저녁을 차려주셨다.

 

나는 밥 먹는 중에도 카메라를 들어 할머니를 담으려고 했다. 우리가 사온 참외를 깎아주실 때에도 할머니를 담았고, 잠시 담소를 나눌 때에도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쉬지 않았다. 계속 사진을 찍으니 할머니께서 핀잔을 주신다.

"이쁘지도 않은 걸 왜 찍어? 다 늙었는데"

그래도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셔터를 누른다.

그렇다고 내가 예의가 없는 걸까? 할머니께선 절대 그렇게 여기실리 없다고 생각했다. 금새 포기하시고는 계속 할머니를 담아도 신경쓰시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할머니를 담는 나를 어찌 생각하고 계실까? 아마 덩치 큰 카메라가 조금은 불편하셔도 귀엽게 봐주실거다. 기특해 하실지도 모른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사랑 혹은 관심을 표현이다. "찍고 싶다" 라고 하는 것은 찍는 모양새에 따라 "알고 싶다." "주고 받고 싶다. " "관심 있다."" 사랑한다." "친하다" "친해지고 싶다" 등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훔쳐서 찍는 것이 아닌 이상은 그렇다. 할머니께서도 그렇게 여기실게 분명하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냐고? 그냥 알 수 있다.

 

지난 주 자전거 라이딩에 무리한 탓인지 아니면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오를 때의 갑작스레 근력의 균형이 깨져 근육이 놀란 탓인지 목 주위부터 오른쪽 어깨까지가 뻐근하여 아내와 할머니가 이야기를 나누며 드라마를 보는 사이 잠시 드러누워 쉰다는 것이 깊이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눈을 뜨니, 어느덧 바깥은 어두컴컴한 밤이 내려앉았고 시계는 9시를 가리켰다. 일어나려는데 통증이 더욱 심해진 듯 했다. 아내에게 이제 가야지 라며 말을 건넸다. 응 가야지. 아내와 아이들도 피곤해보였다.

그 때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목도 아픈데 자고 가. 내일 예배 드리고 저녁에 가."

 

잠시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 할 수만 있다면 자고 가고 싶었다. 할머니 옆의 빈자리를 생각했다.

할머니께서는 늘상 아들들의 손주들을 맡아 기르셨고, 순서로 따지자면 내가 제 1대가 되겠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작은 손주들의 끼니까지 챙겨주시다가 이제 막 첫째는 호주로, 둘째는 군대로 떠나서 할머니의 옆자리는 비어있다. 그 빈자리를 채워드리고 싶었다. 속이 불편하신 할머니의 "꺼억..꺼억.." 빈 트름 소리를 들으며 할머니 바로 옆에 누워 편안한 잠을 청하고 싶었다. 어릴 적 여름이 되면 할머니와 나는 옥상에 올라 돗자리를 깔고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때론 휘익 지나가는 신기한 별똥별을 만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겨울이면 언제나 나를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밀어 넣으시고 당신께서는 늘 윗목에 자리를 하시었다. 체하거나 배가 아파 잠을 못이루는 날이면 언제나 보드라운 손길로 배를 둥글게 쓰다듬어 주셨다. 할머니는 엄마가 되어주셨었다. 할머니의 옆자리는 그런 자리였다. 비어있을 옆자리가 마음에 걸리면서도,

 

"하하 할머니 가야해요. "

라고 대답을 드렸다.

 

할머니를 모시고 계시는 작은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께서는 잠시 모임이 있어서 나가셨고 우리가 집을 나서면 컴컴한 집에 덩그러이 홀로 계신 것이 분명했다. 나 혼자의 몸이라면 할머니의 말씀에 단박에 "네!"라고 대답했겠지만,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해서 인천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나서도 할머니께서는 두어번 자고 가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그러나 내일의 약속들을 생각하니 집에서 잠을 이루는 것이 가족에게 좋을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너무 급히 챙기면 할머니께서 서운해하실까봐 느릿느릿 움직였다.

"할머니, 곧 있으면 방학이니까 그 때 와서 자고 갈께요^^"

"그래." 하시고는 아내를 향해서는

"신랑 목 아프지 않게 가다가 약국 꼭 들러서 약 사먹이고 들어가." 라며 신신당부를 하셨다.

"네~^^" 이럴 때엔 할머니가 아들 끔찍히 생각하시는 시어머니같다는 생각이 든다.

 

문지방을 넘어 아래 널찍한 돌계단으로 내려오자 이윽고 할머니께서도 따라나섰다.

"할머니! 나오지 마세요. 다음에 또 올게요. 안녕히 계세요" 라고 만류를 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오늘도 할머니께서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 보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철문 밖으로 가족 모두가 빠져나오자 할머니는 철문을 붙잡고 서셨다. 우리는 돌아서서 다시 인사를 드리고 다시 좁다란 골목을 빠져나왔다. 차 한대가 다닐만한 조금 더 큰 골목 모퉁이를 돌아 다음 더 큰 골목으로 나왔다. 그리고 혹시나 하고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얼른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고 싶다는 강한 마음이 들었다. 

누구도 쉽게 연출할 수 없는 그런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별 다르지 않을지 모르지만,

어두운 골목과 골목을 비추는 가로등 불빛,

그리고 그 빛 아래에 지팡이를 짚고 서서 조심히 가라는 듯

손짓을 하며 나를 향하신 할머니의 모습은

내가 꼭 담고 싶은

꼭 간직하고 싶은

언젠가 이 순간을 그리워하며

곱씹고 또 곱씹고 싶은

그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마음으로만 담을 수 있었다.

양손은 빈손이 아니었고,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으며,

잠이 와서 칭얼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아내를 뒤로 하고

머뭇거림의 찰나를 흘려보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쉬운 순간이다.

후회가 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할머니의 모습을 담을 기회가 줄어들 것에 대한 걱정이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꼭 다시 와서 집에 돌아갈 때에는 카메라를 메고 있으리라 마음 먹었다.

 

"할머니, 저희 갈께요. 들어가세요~"

"오냐! 조심해서 가라."

 

차에 오르고 시동을 켠뒤 룸미러로 차 뒤를 바라보니 할머니께서는 여전히 우리에게 당신의 시선을 떼지 않고 계셨다. 악셀 위에 천천히 발을 올려놓고 조금씩만 힘을 주었다.

 

 

다음 날, 고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잘 지내니?"

"네, 고모도 잘 지내시죠?"

"그래. 잘 지내. 어제 할머니댁에 다녀갔다면서?"

"네."

"잘 했네. "

"어떻게 아셨어요?"

"할머니가 전화했더라."

"아, 네~"

 

 

"할머니가 너 목아프다며 꼭 약국가서 약 지어먹으라고 나보고 전화해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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