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하고픈 말들 (38)
나와마주하는시간
정리 상태가 그 사람의 내면을 보여준다는 말이 맞는 듯 하다. 교실의 곳곳이 각종 잡동사니로 어지럽혀져 있다. 그리고 그걸 눈으로 보면서도 특별히 개선하려고 하지 않는다. 의욕이 없다. 의지도 없다. 지금은 오직 내 자신의 문제에 집착한 나머지 다른 주변의 것은 신경쓰질 않고 있다. 그리고 남이 보는 나에 대해서도 여전히 신경을 많이 쓴다. 이러저러한 것들을 생각하니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떳떳한 사람인가를 되묻게 된다. 부끄럽고 부족한 부분들이 너무나 많다. 나를 관리하지 못하니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들이나 심지어 교실환경에 이르는 주변의 환경에 대해서조차 관리 빵점이다. 그래서 내가 쉽게 아내 탓을 할 수 없는 것이 우리 가정의 현 상황이 바로 나 자신에 대한 관리 능력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예상 ..
어제 오늘 내가 화가 난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되짚어보자. 그 전에 먼저 철이와의 신랄한 카톡질이 있었다. 카톡은 우리의 비밀 아지트와도 같았다. 우리는 이전에 하지 못했던 우리의 적나라한 과오들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친 것 없이 벌거벗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비난하거나 그 누굴 탓하지도 않았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였고, 어쩔 수 없는 것만 같은 우리의 현실에 대해 마음으로 목놓아 울었다. 내가 아내에게 화가 나는 이유들의 저변에는 아내에 대한 사랑의 부재에서 오는 것일게다. 이제는 거의 포기한 듯 살아가는 나와 아내. 사랑은 없고 오직 의무만 남은 우리의 하루하루는 껍데기일 뿐이겠지. 사랑은 없으니 작은 의무들이 우리의 감정을 옭아맨다. 그것이 쓰라리고 ..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몸이 쉬고 싶은 것이 아니라 마음이 쉬고 싶다. 주님, 쉬고 싶어요....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다. 내 가슴은 텅비었다. 사람들은 이런 텅빈 가슴을 무엇으로 채울까?
종종 나에 대한 자아비판을 많이 하는편이다. 오늘의 자아비판. 나는 무척이나 감상적이라는 것.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 객관적이기보다 주관적이라는 것. 자기 연민이 많다는 것. 아울러 핑계도 많다. 시시때때로 기운이 빠져 해야할 일 앞에서도 미온적이 된다. 나와 반대성향의 사람들이 부럽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자신이 해야할 일에 집중하지만 나는 그 시간에 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데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그러지 말자. 시간낭비다. 나의 내면에 집중하는 것이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런 시간을 포기함으로써 많은 다른 열매를 맺어가자.
아들의 표정이 아까와는 달라졌다. 눈동자는 조금 더 작아졌고 눈빛은 힘을 잃은 듯 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아빠, 자전거 타자" 며 신나게 졸랐기 때문에 갑작스런 아들의 변화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습관처럼 머리에 손바닥을 대보았다. 다은이도 그랬고, 유현이도 그랬고, 나를 닮았는지 유아시절부터 열이 자주 났고 한번 열이 나면 좀처럼 내려가질 않았다. 그래서 잘 지내는 것 같아도 생각나면 한번씩 아이들의 이마에 손을 얹곤 했다. 내 손은 비교적 정확한 온도를 잴 수 있다. 혈액순환이 잘 안 되는 걸까? 손은 늘 바싹바싹 말라서 손바닥 피부껍질엔 습기가 거의 없고 손바닥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길들이 하얗게 일어나 보일 정도다. 건조한 손이 어딘가에 접촉을 하면 미세한 온도차를 잘 감지를 한다. 특..
오랫만의 서울 나들이었다. 광화문을 지나 경복궁의 돌담길을 걷는 것도 좋았고, 선생님의 사진전을 여유로이 보며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것도 좋았다. 서울에 올라가는 김에 할머니를 뵙자는 아내의 의견에 흔쾌히 동의했다. 승락이라기보다는 할머니를 생각해준 아내가 고마웠다. 부슬비가 살며시 내리고 있었다. 시장에서 산 참외 박스를 두 손에 들고 할머니가 사시는 집 골목길 안으로 들어섰다. 오랫만에 적셔진 땅에서 오랜 추억과도 같은 냄새가 올라왔다. 할머니 댁의 맞은 편 집 어르신들이 처마 밑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시고 계셨다. 뵌 적은 없지만, 가벼이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댁의 철문은 참외박스가 간신히 들어갈 만큼 좁다. 철문을 일단 통과하고 1미터 앞에서 모퉁이를 돌면 ..
좁쌀 만한 검정 벌레 한 마리가 벽을 타고 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내 책상 앞 벽을 자유로이 돌아다니는 것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한참을 기어가다가 이윽고 날개를 펴서 켜 놓은 스탠드의 불빛 아래로 몇번 비행을 하더니 다시 벽에 달라붙어 돌아다닌다. 그리곤 사라져버렀다. 가끔 이 녀석이 내 얼굴까지 날아오면 그저 손을 한 번 휘저어 쫓을 뿐이다. 그러나 벌레는 갑작스런 거대한 공기의 흐름에 놀라고 말았다. 잠시 벽에 달라붙은 채로 방금 있었던 일을 곱씹어 본다.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알고 싶었지만, 아무도 대답해 주는 이 없다. 나는 다시 녀석을 힐끔 보고는 타자질을 계속한다. 굳이 잡고 싶지 않다. 여름이니까.